
회개
회개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다. 회개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평생 계속되는 과정이다. 회개의 횟수가 많을수록 성숙하다.
우리가 육신의 일과 생각들에 묶인 삶을 살면 우리는 죄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율법 아래 놓이게 된다. 그러나 새언약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온전히 율법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가 커질 때 죄와 율법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죄, 문제, 하나님나라에 대한 선포
악한 영에게 당신이 죽었다고 당신 입으로 선포하라. 당신이 어떤 문제로 지금 묶여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죽었다고 선포하라. 이제 나는 그 죄, 문제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 그 죄 값은 예수와 해결하라고 선포하라. 우리가 죽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었다고 선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승리의 비결은 죽기 전에 죽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내적치유, 질병치유 이든 대부분의 문제는 회개하지 않음과 용서하지 않음이 사단에게 그 사람을 속박할 합법적인 권리를 주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 죄에 대해 죽었다고 선포하는 것은 사단으로부터 이러한 속박을 파기하고 하나님께과 다시 계약하는 것이다.
내가 지켜야 했던 율법을 이제는 예수님이 이루셨다.그러므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연습을 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서 드러나도록 나를 포기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입술의 선포로 이 땅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성전이 될 때 우리가 거하는 장소와 밟는 땅이 곧 하나님 나라이다.
마음, 내적치유
모든 생각과 감정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마음은 영적 통로이자 결과물이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말씀의 기초 이에 지금 이 시간 이 사건에 주시는 계시로 가득 차야 한다. 믿음은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을 지켜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쓰레기를 걷어내지 않으면 생수의 강은 흐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내면의 상처는 오늘도 사단의 저녁 반찬거리로 올라간다.
불행의 대부분 원인은 자신 안에 있다. '나는 완전해야 한다. 나는 모든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당신의 업적이 당신의 가치를 나타낸다.'는 등의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저주
자신이 저주로 묶여 있지 않은지도 점검해야 한다. 저주에는 영적인 힘이 있다. 영적인 능력은 우리의 동의 하에 흘러가게 된다. 동의는 입으로 선포되는 말이나 마음으로 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말을 하게 되면 그것은 사단에게 동의하는 결과가 된다. 사단은 사람의 동의를 받아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정리하면, 저주는 우리가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하여 사단에게 능력을 행하도록 권리는 주는 행위이다. 반대로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선포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동의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타인에게 축복이 흘러 들어가게 된다.
데렉 프린스는 정신병적 혹은 감정적 질환, 만성적 질병, 불임증, 유산 경향, 기타 지속적인 가난, 재정 적자, 연속적 가정 불화 중 하나 이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저주 아래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했다. 저주를 끊고 자유하려면 다음의 순서에 따라 회개하고 사단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 먼저 저주를 일으킨 의식, 행위, 상징물, 계약, 가담, 관계 등을 청산한다.
- 모든 저주의 행위를 회개하고 죄 용서를 구한다. 가계에 내려오는 저주는 저주가 임하게 한 부모의 죄를 대신하여 회걔한다.
- 상처 준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용서를 구한다.
- 예수님의 보혈로 덮고 성령님의 임재를 초청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으로 저주를 끊는다.
- 저주로 인하여 발생한 내적 상처를 치유하는 기도를 한다.
- 마지막으로 자신을 축복한다.
계시적 믿음
계시적 믿음은 긍정적 사고가 아니다. 계시적 믿음은 믿음의 주체가 하나님이다. 내가 아니다. 성령에 의해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다. 그분의 뜻이 나에게 계시되어진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보이는 세계로 향해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 계시적 믿음 | 경험적 믿음 |
| 마음의 어떤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반응 |
외부자극에 대한 감각적 반응 |
| 구한 것을 이미 받았다는 믿음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 영의 지배를 받는 믿음쥐고 있던 문제를 하나님께 놓아 버리는 믿음갈망한 내용을 분명한 믿음의 눈으로 그리는 믿음 순종, 행동이 동반되는 믿음 |
간절한 감정이나 원함, 이루어진 사실에 기초한 믿음 오감으로 확신할 때 믿는 믿음 |
심령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단지 우리의 생각에 속해 있는 것으로부터는 아무런 초자연적인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우리에게 닥친 환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조건들을 지시하고 명령하며 속박하려는 환경의 권세를 부정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태초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본래의 삶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 믿음, 성령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문제들에 마음이 빼앗겨 말씀 없이 믿음 홀로 남게 하지 말라. 말씀 없이 홀로 남은 믿음은 자기경험적 믿음으로 전락하게 된다. 말씀 없이 성령님이 사실 일은 없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행하신다.
육적, 영적 반응
육적 반응은 외부자극이 가지고 있는 권세에 지배될 때 일어나는 반응이다. 이에 항상 뒤따르는 것이 두려움, 무서움이다. 두려움은 세상적 권세에 동의할 때 나오는 반응이다. 따라서 두려움은 마귀를 믿는 믿음이며, 불신이다. 영적인 어떤 실체도 우리의 동의 없이는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것에 대한 체험적 확신이 있어야 한다. 영적 반응은 선포의 형식을 취한다. 외부자극이 가지고 있는 권세를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능력은 말로 선포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과 권세가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선포되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진정한 믿음은 선포하는 데 있다. 그리고 행하는 데 있다.
믿음의 현재성
진정한 기도는 과거에 예수님이 이루신 일들을 현재의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선포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은 현재이나 일어난 때는 과거이다. 과거에 이미 일어난 것을 믿음으로 현재에 취할 때 미래에 나타난다. 중요한 사실은 과거에 행하신 것을 현재의 믿음으로 선포할 때까지는 우리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지 우리의 느낌을, 환경을 믿는 것이 아니다.
선포 기도, 기름 부음
선포기도의 능력은 성령님과의 친밀함에 비례한다. 이 자리에 성령님이 임하시도록 초청하라. 성령님의 편재와 임재를 구분해야 한다. 성령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모든 곳에 편재(with, in us 안에 거하심)하신다. 또한 우리가 성령님을 간절히 초청할 때 그 장소에 강력히 임재(upon us 위로부터 임하심)하신다. 임재 하심은 기름부음이다. 말씀의 능력은 성령님의 임재(성령세례) 안에서 이루어진다. 선포기도는 산을 향해 '산아, 하나님이 너보다 얼마나 큰 지를 알지어다'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단지 성령충만을 받으면 능력이 임할 것으로 오해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하나님이 능력으로 임하실 때(이는 기름부음으로 성령충만과 구별된다) 성령충만을 받고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다. 선포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한다면 성령님이 임재하신 가운데 깊은 기도를 하는 훈련을 하라. 또 성령님이 임재하실 때 성령님과 친밀함을 누리라. 성령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라. 여러분의 주파수를 성령님께 맞추어 놓고 성령님의 함께하심 자체를 즐겨라. 그리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라. 그려면 성령님이 말씀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선포할 수 있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선포할 수 있는 권세를 갖는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는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내적 열매가 나타난다. 그러나 권능은 우리 '위에 임하시는 그분'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이 아닌. 성령님의 우리 안에 거하심은 언제나 있지만 위로부터 임하심은 때와 이유가 있다.
기름부으심은 하나님이 무언가를 이루어주시도록 간구하는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우리 심령의 영역(뱃속 깊은 곳)에서 그 일을 성취하시게 충분한 능력과 생수의 흐름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기름부으심을 어떻게 남을 위해 흘려보내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가나안 사역자 스쿨
가나안 스쿨 과정은 회개, 내적치유, 친밀함과 하나님 음성듣기, 순종, 기름부으심 등이 있다. 먼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죄의 문제와 내면의 상처를 지적하시고, 하나님나라의 용사가 되기 위한 회개를 요구하신다. 이어 친밀함, 즉 성령님과 동행의 훈련을 시키신다. 이 기간 동안 자신, 사단,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순종을 시험하신다.
꾸준히 하나님을 추구한 사람들
캐트린 쿨만, 오럴 로버트 조용기, 라인하르트 본케, 카를로스 아나콘디아 등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그분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엘리사와 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하나님을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기름부음을 취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묵상해 보라(왕하 2:8-15). 영적 배고픔과 겸손이 우리 마음에서 섞일 때 놀라운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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